문화컨텐츠 / / 2022. 11. 20. 22:43

앤디 워홀 전 세계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 타고난 재능을 뒷받침해준 가족들과 끊임없는 자기 노력

팝아트
앤디 워홀 / 1928. 8. 2~ 1987. 2. 2

앤디 워홀(앤드루 워홀라)은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학교에 가는 시간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어린 아들을 위해 그림 도구와 사진기를 친구 삼아 놀 수 있도록 엄마는 배려해주셨고, 초등학교 때는 친구도 없이 혼자서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는 앤드류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이 카네기 뮤지엄의 무료 예술학교를 추천해주셨다. 

 

앤드류에게 예술학교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고, 훗날 다양한 예술세계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영감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에 예술 공부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없었던 앤드류에게 예술에 대한 기초지식을 차근차근 조금씩 익혀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앤드류는 몸이 약해 운동신경 체계에 일시적인 장애가 생겨 온몸에 경련이 일고 발작을 하는 무도병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두고 과일 장사를 하면서도 그림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틈틈이 길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열정이 있었다.

앤디는 죽음에 대한 공포심과 두려움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고 한다. 곧이어 어머니의 병환에도 앤드류는 많이 힘들어했다. 

앤드류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카네기공과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미술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고, 필립 펄스타인을 만나 우정 어린 친구가 된다. 앤드류는 상업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서는 첫걸음을 백화점 직원으로 들어가면서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진정한 예술가가 되려면 뉴욕으로 가야 한다는 목표로 고향 피츠버그를 떠나 뉴욕에서 첫 출발을 시작한 앤드류 워홀라는 앤디 워홀로 이름을 고치고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뉴욕, 예술가들의 도시가 된 이유

 

팝아트
앤디워홀 / 초상화기법

 

뉴욕이 문화의 수도, 예술의 도시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급속히 세력을 키운 유럽의 사회주의 정부가 이념이 맞지 않는 예술가들을 탄압했고, 이를 피해 많은 유럽의 예술가들이 뉴욕으로 이주해 왔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수 많은 아방가르드(전위예술) 예술가들이 자기나라에서 마음껏 예술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좀 더 활동하기 편한 미국으로 망명하듯 건너왔고, 자유로운 뉴욕에서 억압받던 자신들의 예술적 열정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진 뉴욕에서는 세계 각국의 문화가 미국 본토 문화와 어우러지며 새로운 문화들이 형성되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 예술 지망생들이 뉴욕에서 활동하고 싶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뉴욕은 경제, 금융,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발전하며 1920년대 흑인 예술문화의 부흥이 되었던 할렘 르네상스와 현대미술의 추상 표현주의가 탄생한 곳이며, 펑크 록, 살사, 디스코 등의 주요 음악 장르가 시작된 곳이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미국 최대의 미술관으로 역사는 비록 짧지만 학문적으로 귀중한 소장품들을 많이 전시하고 있고 세계 여러 나라의 미술품과 유물 등 총 200만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이 유명하다.

 

앤디워홀

 


앤디 워홀은 뉴욕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목표로 고민했다.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홍보하며 일을 찾던 앤디는 GLAMOUR사의 잡지에 들어갈 구두 드로잉을 그려 호응을 얻었고, '성공은 뉴욕에서 이루어진다'는 잡지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는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다.

'성공은 뉴욕에서 이루어진다!' 는 삽화의 새로운 감각과 디자인으로 시작한 앤디 워홀은 조금씩 업계의 인정을 받으며 늘어나는 클라이언트와 함께 그 명성도 계속 올라갔다. 또한, 친구 찰스 리산비와 떠난 세계일주는 성공가도에서 찾아오는 공허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유럽의 고전 명화가 전해주는 역사와 가치에서 깨달음을 얻은 앤디는 순수미술에 대한 열망과 실현을 꿈꾸며 자신만의 예술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은 미술가뿐만이 아니라 예술분야 전반에 걸쳐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삶 자체가 예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앤디의 활약은 영화감독으로, 배우로, 작가로, TV 프로그램 제작자로, 연애 매니지먼트를 제작하기도 했다. 또, 잡지 발행인으로 현재도 발간되고 있는 인터뷰는 최장수 출간 기록을 세우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건, 유효기간이 없는 순수예술이다

 

유명한 명화를 그린 화가들은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렸고, 원하는 대상을 원하는 방법으로 표현했다. 그것이 상업미술과 순수예술의 차이다. 엔디는 순수미술에 팝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시도한다. 앤디는 어렵고 복잡한 미술을 하기보다 상업미술처럼 누구나,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앤디 워홀의 미술로 세상에 평가받고 싶어했다.

 

대중에게 친숙한 것 - 캠벨 수프 통조림이 대표작이 되었고 사람들의 생활에 가까이 밀접한 곳에 있으면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대상을 어떻게 그림의 소재로 삼을 것인가 고민했다. 첫 개인전을 열게 되면서 캠벨수프 통조림디자인은 관람자들에게 호평을 받는다. 파격적이고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다 라는 극찬과 호불호는 엊갈렸지만, 권위적이고 우월적인 상류계층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예술에 대해 대중화를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제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가난한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도 자연스럽게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모든 예술이란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앤디워홀


앤디 워홀이 작품 제작에 사용한 표현방법으로 번지기 기법을 활용하였고 향후에는 다른 표현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적용시켜 작품을 표현하게 되었고, 실크스크린은 실용적이고 편리하고 대량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고 빠른 아이디어를 전개할 수 있어 편리하고 정확했다. 또, 대중들은 앤디 워홀만의 이러한 표현기법을 좋아하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의 작품세계는 미국의 물질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코카콜라는 언제나 코카콜라다. 대통령이 마시는 코카콜라는 내가 마시는 코카콜라와 같은 콜라다. 앤디 워홀의 이 말처럼 그는 대중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이미지를 이용해 20세기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했다.

 

앤디 워홀의 번지기 기법은 공장에서 찍어내듯 작품을 만든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앤디 워홀의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값이 떨어지지 않았다. 순수 미술가로 전향하여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작품으로 재난 시리즈와 같이 일상적이고 가벼운 소재에서 벗어나 사회문제 전반으로 작품 소재를 확장했다.

 

앤디 워홀의 작품이 절대 가볍지만은 않다는 것을 대중에게 알리며 예술적 가치를 높여 준 것이다. 그 외의 초상화 시리즈, 꽃 시리즈, 고전작품들을 재해석하여 팝아트화 시켜 버린 것이다. 

미국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 발생한다. 앤디 워홀은 솔라나스라는 여성으로부터 피격을 당하고 천신만고 끝에 재기하였지만, 이어진 1977년 평생의 든든한 조력자였던 어머니가 별세하게 된다. 앤디는 또 한번 인생의 큰 고비를 겪게 되지만 그 사이에도 앤디는 앤디 워홀의 인터뷰라는 잡지를 창간하게 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가장 핫한 문화 아이콘이 되어 있었다.

 

앤디 워홀은 미술계의 유명인사가 되었고 대중들과 예술가로서 소통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59세의 앤디 워홀은 담낭제거수술을 받은 뒤 합병증으로 1987년 2월 22일 사망하게 된다.

 

 

팝아트

 

책을 읽고서

2022년 현재까지 앤디 워홀이 살아있었다면 어땟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급변하는 기술개발과 함께 전 세계는 디지털 문화혁명으로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촘촘히 얽힌 세상이 되었고, 날이새면 새로운 디지털기술들과 뉴스들이 온 지구를 덮어버린다. 이런 현재의 모습을 본다면 앤디 워홀은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아마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까 싶다.

 

엔디 워홀은 예술가와 미술가, 디자인을 하는 모든 매니아들에게 한번쯤은 닮고 싶은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표현주의는 어디서나 그려지고 창작 되어지고 있다. 모든 것은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따라 한다. 그러기에 앤디의 시기에 발전한 기술은 지금 본다면 아주 촌스럽고 어설프고 아마추어 같지만, 그 시대 그의 삶은 새로운 충격이고 도전이었고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의 신선한 자극을 본받고자 캔버스 앞에, 스케치북위에 연필을 들고 앉았다. 앤디워홀은 참 닮고 싶은 예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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